오늘은 한국 IMF 외환위기에 대해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당시 우리나라는 엄청난 위기를 겪었습니다.
현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
겪지 않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당시 사건이 얼마나 심각했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모으기 운동'이 바로 이 IMF 때 등장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유의 단합심으로 엄청난 위기를 극복한 그때의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IMF
당시의 사건 자체를 'IMF'라고 혼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IMF란 국제통화기금을 말합니다.
세계무역의 안정적인 확대를 위해서 외환시세 안정과 철폐, 그리고 자금 공여를 수행하는 곳입니다.
한국 IMF 외환위기 배경
당시 우리나라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경제개발도상국으로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금융자유화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6%가 넘어가고 있을 정도였죠.
이때 정부가 제대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은행권에게 대기업들에 돈을 빌려주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근데 그 기업들이 파산하기 시작했죠.
이에 '정부보증'으로 대출을 해준 정부는 수많은 부채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개발도상국이던
동남아 국가들 또한 화폐가 폭락하는 등 위기를 겪었는데,
이는 그들과 무역하던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피해를 본 것이죠.
당시 우리나라에게 대출을 해준 외국계 은행 및 기업들은 거의 미국 소속이었습니다.
많은 기업이 파산 직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IMF의 최대 주주 국인 미국에서는 금리 20%를 받겠다고 압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채무상환기간을 연장해달라 요구했었는데,
외국 금융권 등에서는 이를 거부하면서 상환을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외화가 약 40억 달러였는데,
갚아야 할 빚이 1500억 달러였죠.
하는 수 없이 IMF에 580억 달러를 받았지만
공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20%의 이자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빚을 떠안으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죠.
근데 그 와중에 우리 국민들은 다 같이 협동해서
IMF 외환위기를 예정보다 무려 4년 일찍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굴러다니는 금을 나라에 바쳤습니다.
그들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행동했습니다.
1998년 1월 5일 시작된 이 운동에
전국적으로 약 349만 명이 참가했고
약 225톤의 금이 모였습니다.
당시의 시세로 약 21억 7천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2001년 8월, 드디어 IMF로부터 지원받은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했습니다.
언론은 당시 이 소식을 사회 각계에 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을 '제 2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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